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IVF 학사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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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3-06-12 조회2,165회 댓글0건

[소리정음]
돌고 도는 돌봄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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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youtu.be/RhYD7BonAGk 

[소리] 2022 다섯 번째 소리 10+11호(통권264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청년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청년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독박육아, 독박간병 등, 돌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신조어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데는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가 필요한 계절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돌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돌봄의 연대기  





https://youtu.be/RhYD7BonAGk 

돌고 도는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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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돌보고, 사회의 돌봄을 받는 우리 가족 (필자는 맨 오른쪽) 

                                                                                                                                                                                            



◆ 박미현(홍익대96)

육아 18년차, 워킹맘 4년차. 

고3, 고1, 초4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자녀 돌봄의 막바지에 있는 워킹맘입니다.





나의 엄마 아빠는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실버일자리사업’을 통해 일을 하고 계신다. 두 분 모두 돌봄과 관련된 일을 하신다.


엄마의 돌봄


엄마는 ‘장애인활동지원사(예전에는 활동보조인이라 불림)’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정에 방문하여 일상생활을 보조하고 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방문요양보호사와 업무 영역이 비슷하지만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점이 다르다. 엄마 친구분이 노인 일자리 중에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며 알려주셨다고 한다. 국가 기술 자격이 필요한 일은 아니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5일간 4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일하는 동안에는 소속된 기관에서 매년 보수교육을 받는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 인식개선, 활동보조의 의미, 휠체어 환자의 이동방법, 성교육 등을 받으셨다.


엄마는 교육 이수 후 바로 일을 시작하셨다(공백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6개월간 파주에서 와상장애인(누워서 거동이 불가한 환자) 활동지원사로 일하셨다. 이 환자는 사고로 와상환자가 되었는데, 사고 후 가족들이 돌보지 않아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족이 돌보지 않은 집을 정돈하고, 같이 병원도 가고, 은행에 같이 가서 본인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국가 보조금을 직접 받아서 사용하도록 돕고, 딸의 생일날 딸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을 마련하고 전달해주는 일도 대신하셨다.


서울로 이사하신 후에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소개받은 뇌병변 장애아동 S를 초등학교 5학년까지 6년간 돌보셨다. 아침에 S의 집으로 가서 유모차에 태워 등교시키고, 학교 수업시간 동안 함께한다. 나란히 앉아서 연필을 같이 잡고 글씨를 쓰고, 화장실에 데려가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인다. 수업이 마치면 재활센터를 데리고 가거나, 일정이 없는 날은 집에 와서 S의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함께 있는다. S의 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면서 엄마는 일을 쉬셨다.


몇 년간 일을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셨는데, 이번에 돌보는 대상은 엄마의 오랜 친구분으로 앞을 잘 못 보는 분이다. 시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어슴푸레하게만 보인다고 한다. 기존에 돌봐주던 활동지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었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엄마에게 요청하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앞이 안 보이는데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 엄마는 요즘 매일 친구를 돌보신다. 집안일도 해주고, 대화도 하고, 함께 미용실도 가고,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가고, 시장도 가고, 이번 명절 음식도 함께 만들었다고 하셨다. 만약 엄마의 옆집에 사셨다면, 엄마가 오며 가며 지나는 길에 들러서 해주셨을 것 같은 일들이다.


아빠의 돌봄


아빠는 ‘워킹스쿨버스’라는 실버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계시다. 워킹스쿨버스는 ‘어린이 보행 안전 지도’서비스로,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이 가장 많은 등하교시간에 초등 1~2학년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동행하는 통학돌봄이다. 학교까지의 통학로에 몇 군데 정거장을 정하고, 인솔자가 통학로를 가면서 정거장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까지 가는 것이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이고, 2010년 우리나라도 시범적으로 도입을 했다고 한다. 반응이 좋아서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별로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지자체는 미취학아동 등하원도우미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빠는 등교 시간에만 이 일을 하신다. 유니폼(조끼와 모자, 경광등)을 착용하고 아이들이 모이는 지정된 장소에서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 12명을 인솔해서 학교 교문까지 데려다주신다. 경계성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 맞벌이 가정 아이, 엄마가 아픈 아이, 양육자가 연로한 아이 등, 다양한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12명의 아이를 신호등을 2개 지나 학교 교문까지 데려다주신다. 어느 날은 교문까지 안전하게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뒤돌았는데, 교문 앞 사거리에서 자동차 정면충돌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언제든 이런 사고가 있을 수 있는데, 아이들을 안전하게 등교시킬 수 있어서 보람 있다고 하셨다. 경계성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를 통솔하는 일은 조금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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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보는 학생들의 등굣길
 


나의 돌봄을 도와준 사회의 돌봄


나는 세 아이를 출산하고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살림과 돌봄을 전담했다. 아이들의 영아기에는 다행히도 엄마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짬을 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는 사회적 돌봄을 경험했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밀린 살림도 하고, 쉬기도 하고, 뭔가를 배우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사회적 돌봄은 내가 다시 사회로 나오는 데 중요한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때때로 급박한 상황에서는 ‘엄마찬스’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어린이집은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으로 나뉘는데, 국공립어린이집은 대체로 규모가 크고 영아반에서 초등입학 전까지 운영되고 운영시간도 긴 편이어서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다. 민간어린이집의 경우, 어린이집 하원에서 부모의 퇴근까지 아이 돌보미를 별도로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저렴하게, 유치원보다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지만, 맞벌이가정 우선, 다자녀가정 우선 등 우선순위가 있어서 원한다고 모두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공립어린이집 경쟁은 치열하고 외벌이 가정의 첫째들이 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니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초등 돌봄교실’을 이용했다. 돌봄교실은 학교 안에서 방과 후에 필요한 시간까지(대부분 오후 5시까지 운영)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다. 줄넘기나 보드게임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아이들의 방과 후 일정(학원 등)에 따라서 하교한다. 다행히 막내의 학교는 소규모 학교라 돌봄교실 자리가 넉넉했고, 코로나19 기간에도 긴급돌봄을 운영했기 때문에,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돌봄 공백이 크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마다 돌봄 정원이 꽉 차서 추첨을 해야 한단다. 아이가 돌봄교실 추첨에서 떨어지면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학원에 보내거나, 다른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거나(지역돌봄), 조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돌고 도는 돌봄


우리 아이들이 다닌 어린이집이나 돌봄교실은 여건이 좋았다. 아주 급박한 상황에는 엄마가 달려오셨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유연근무가 활성화 된 덕분에 재택근무와 휴가를 적절히 활용해서 돌봄 공백 없이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을 병행할 수 있었다. 남편보다는 내 직장이 유연근무가 활성화되었고 근무시간이 일반인보다 짧았기에, 맞벌이를 하면서도 돌봄은 거의 내가 담당했다. 남편의 근무여건이 달랐다면 아마도 나와 동일하게 돌봄을 담당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퇴근이 5분만 늦어도 돌봄교실 선생님이 퇴근을 못하게 되어, 막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었고 나와 통화하면서 귀가하도록 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돌봄의 공백은 치명적이지만,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공백의 틈이 주는 위기감은 작아진다. 그러나 노인이나 장애인 돌봄의 경우는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일 것이다. 


엄마는 뇌병변 장애아동 S를 오래 돌보면서, 그 부모의 삶을 보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모두 고학력자였지만,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니 부모가 개인 시간이 없이 아이를 돌보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S를 잘 돌보는 것이 S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S의 부모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6년간 S를 돌보셨다고 말씀하신다.


막내가 5살이었을 때, 큰애는 13살, 둘째는 11살이었다. 초등부와 영아부 여름성경학교가 같은 날이었다. 초등부에 두 아이를 보내고, 부모와 함께 하는 영아부 성경학교에 갔다. 영아부 선생님이 막내는 잘 있을 것 같으니 3시까지 데리러 오라고 하셨다. 막내가 잘 따르는 선생님이었고 나는 그 5시간이 너무나 고팠기에, 딱 한 번만 고민하고는 막내를 성경학교에 맡겨두고 나왔다. 그렇게 나와서 남편과 둘이 냉면을 먹고 영화를 한편 봤다. 여름성경학교는 교회 프로그램이지만, 내 아이를 맡아서 잘 돌봐주시리란 믿음이 있었기에 돌봄의 시간이기도 했다. 막내를 돌봐주신 그 시간이 나에게도 꿀과 같은 시간이어서 교회에서 입은 큰 은혜였다. 언젠가 나에게 자녀 양육의 책임이 덜해지고 연륜이 조금 더 쌓인다면, 교회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에게 이런 쉼의 시간을 주고 싶다.


아빠는 워킹스쿨버스 일을 좋아하신다. 거기서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도 주시고, 매일 참여하는 노인복지회관 수업료도 내신다. 만약 일을 하지 않고 워킹스쿨버스 보수만큼 그냥 돈을 받고, 노인복지관 수업료도 공짜라면 어떠실지 여쭤봤다. 아빠는 워킹스쿨버스로 받는 돈이 소액이라 생활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 안 하고 그냥 받는다고 해서 크게 좋을 것 같지는 않다신다. 오히려 일해서 받은 돈으로 수업료를 내는 것이 당당하고 좋다고 하셨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매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인 일과를 할 수 있는 것도 돈을 받는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은퇴 후 소박한 삶을 이어가시는데, 옆에서 보면 활기가 넘친다. 워킹스쿨이나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이 돌봄서비스를 받는 아이들이나 장애인을 돌보기도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하도록 돌보는 사업인 것도 같다. 부모님이 이 아이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보는 일이 그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 되고, 반대로 우리 부모님 당신들께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도록 돌보는 일이 된다. 활기차게 지내시는 부모님을 보면 나도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돌봄의 이야기는,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우던 시대만 해도 모두 가족 안에서 감당하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일반적인 가족 형태로는 가족이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아마 부모님이 지금 하는 일을 더는 하실 수 없는 때가 오면, 직접적으로 딸인 내가 부모님을 돌봐야 할 것이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는 앞날을 걱정하신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부모님의 바람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양질의 요양병원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우리 부모님을 돌봐야 할 때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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