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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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3-02-20 조회2,918회 댓글0건

[소리정음]
어쩌다 원주민 [서울 중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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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youtu.be/88kb3f8sAho 

[소리] 2022 세 번째 소리 08+09호(통권26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서울 중심 대한민국


최근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등장인물들의 고충에, 많은 경기도 주민들이 공감을 표하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입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5,839명으로, 2순위인 부산(1㎢당 4,248명)의 약 4배에 이릅니다. 

서울에 많은 인프라와 일자리, 문화, 교육 면에서의 혜택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서울민국’은 지방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불평등한 상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제 어떤 불평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서울 중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어쩌다 원주민  _  호욱 

 우리들의 블루스를 추자  _  좌성훈 




https://youtu.be/88kb3f8sAho 

어쩌다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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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천

                                                                                                                                                                                               



◆ 호욱(연세대04)

연세대 원주캠퍼스(현 미래캠퍼스) 출신. 

량으로 살고 싶지만 15개월 아기를 돌보며 부지런히 살고 있는 원주민.



19년째 원주민


“욱이, 나 OO필드 처음 가봤어.” 어느 날 원주에 사는 친구가 고양시에 있는 종합쇼핑몰 OO필드를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아내, 아기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갔는데 요식 브랜드가 아주 많았다고 했다. 몇 개 읊어주었는데 내가 들어본 브랜드는 한 개밖에 없었다. 쇼핑몰도 아주 커서 유아차(유모차)를 끌고 다닐 만했단다. 친구 아내는 휴가를 OO필드로 오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더랬다. 원주에는 OO필드 같은 규모의 종합쇼핑몰이 없다. 강원도에도 없다.


원주에 산 지 19년째다. 서울, 수도권에서 19년을 살았으니 내 인생의 반반씩 살았다. 원주에 정착한 지 오래되었지만, 처음엔 정착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원주에 있는 대학에 오게 되면서 원주살이가 시작되었다. 인서울을 꿈꿨으나 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소속 변경이나 이중전공 같은 제도를 활용해 서울에 있는 캠퍼스로 갈 생각이었다. 마음은 서울에 있고 몸은 원주에 있었다. 학교에 정 붙이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평일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금요일이 되면 서울에 있는 교회에 봉사하러 간다는 핑계로 서울로 급히 올라갔다. 일요일 저녁엔 다시 원주로 왔다.


학교가 조금씩 좋아진 건 IVF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고 그 사람들과 더 함께 있고 싶었다. 학교를 산책하고 원주 시내로 놀러도 다녔다. 학교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부터였다. 조금씩 정이 들었다. 사람에게도 학교에도 원주에도. 나는 점점 주말에 서울로 가기 싫어했고, 원주에서 교회를 다니는 선후배들을 부러워했다. 캠퍼스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원주에서 활동 학사를 했다. 6년 동안 전임 간사도 했다. 지금은 원주에서 아내, 15개월 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떠나고 싶었던 도시에 19년째 살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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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한적한 집앞 풍경


글을 쓰기 전에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어쩌다가 원주에 정착했지?’ 분명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 가지 이유로 답할 수 없었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고 했던가? 어쩌다. 나는 ‘어쩌다’ 정착했다. 원주에 있는 대학에 왔다. 대학 4년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서 직업도 가졌고, 아내가 원주살이에 동의해 주었다. 수도권에 사시는 부모님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멀리 떨어서 살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이 맞물려 원주에 살고 있다. 어쩌다 정착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오래 산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 원주살이에 거창한 마음 같은 것은 없다. 중심이 싫고 변두리가 좋아서 정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중심에 있고 싶었지만 밀려난 사람이다. 그리고 원주도 강원도에서는 서울이다. 인구가 35만 명이다. 강원도에서 가장 많다. 원주의 인프라를 찾아오는 강원도민이나 타지역 사람도 많다. 강원도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백화점은 원주에 있다. 강원도에는 상급종합병원이 2개뿐인데 그중의 하나가 원주에 있다. 아내와 내가 다녔던 산부인과는 난임을 전문으로 하는 산부인과인데 횡성, 제천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나는 중심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 경험은 변두리의 경험으로, 아니면 중심의 경험으로도 읽힐 수 있다. 중심이 속되고 변두리가 신성하다는 마음으로 정착한 것도 아니다. 성속(聖俗)을 그렇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어쩌다 원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글로 읽히길 바란다.


다른 곳에는 있고 원주에는 없는 것


서울에 살아봤기 때문에 원주가 불편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주에만 살았으면 잘 몰랐을 것 같다. 그런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처음 원주에 와서 제일 놀란 것 중 하나는 시내버스 막차 시간이다. 원주에서는 밤 10시면 시내버스가 끊긴다. IVF 소그룹을 할 때도 원주에 사는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밤 10시 어간에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난다. 나는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 갈 일이 있으면 시내버스가 끊기기 전에 원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려고 했다. 서울에 살 때는 대중교통이 밤늦게까지 있기에 막차 시간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원주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버스 배차 간격도 길다. 원주에서는 15분~20분 배차면 자주 다니는 버스다. 30분 배차 혹은 그 이상 되는 버스도 많다. 버스 시간표를 알아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서울에 살 때는 5~10분 배차에 익숙했다.내가 원하는 때에 나가서 정류장에 있으면 적당한 때에 버스가 온다. 심지어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도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 가는 버스 노선도 여러 개니까 말이다. 교통체증이 예상되면 지하철을 타면 되었다(원주엔 지하철이 없다). 내가 느낀 서울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시간표를 몰라도 된다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여보, 나 청주 가서 교육받으려고 해.” 얼마 전, 나는 운전학원기능강사 자격시험을 보았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합격했고 1박 2일의 연수 교육만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원주에는 없었다. 강원도에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충북 청주로 신청했다. 편도 2시간의 거리를 가서 교육을 받고 모텔에서 묵은 뒤 다음 날 교육을 마저 받고 집으로 왔다. 왜 원주, 아니 강원도에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다른 곳에는 있고 원주에 없는 것은 많다. 야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원주를 연고로 하는 야구팀이 없는 게 아쉽다. 인구수로 봤을 때 없는 게 당연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강원도에도 없다. 서울에는 세 팀이나 있다. 수도권으로 넓혀보면 다섯 팀이나 있다. 프로야구팀의 절반이 수도권을 연고지로 하는 건 당연한 건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서울로 원정 경기를 오면 경기를 보러 갈 때가 있는데, 가기 전날까지 고민한다. ‘갈까? 말까? 오가는 시간이 얼만데, 드는 돈이 얼만데, 차를 가져갈까, 아니면 시외버스를 타고 갈까, 경기를 보고 시외버스를 타고 원주 터미널에 도착하면 시내버스 끊겨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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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가야만 즐길 수 있는 야구
 


가끔은 영화 말고 뮤지컬이 보고 싶다. 아기자기한 소극장 공연 말이다. 그런데 뮤지컬을 보기 위해 서울을 가기는 꺼려진다. 야구만큼 뮤지컬을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가끔 원주 백운아트홀에 공연 팀이 올 때가 있다. 원주에서는 그렇게 공연을 접한다. 내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공연을 검색하고 보고 싶은 공연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선택해 준 공연을 내가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흥미가 떨어진다.


나는 식자재 배송하는 일을 한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일정한 시간대에는 공중파 라디오가 나오지 않는다. 강원지역 라디오가 나온다. 공중파 라디오보다 덜 알려진 DJ와 게스트가 나온다. 재미가 떨어지고 선물의 규모도 적다. 사연이 적어서 라디오 DJ가 청취자들에게 문자 많이 보내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 공중파는 어떤가?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교통이나 날씨 같은 생활 정보는 수도권을 먼저, 수도권을 중심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원주가 서울과 다르다고 느낄 때는 많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그 프랜차이즈가 원주에 없을 때,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할 만한 곳이 별로 없을 때, 듣고 싶은 글쓰기 강좌가 서울에서만 열릴 때, 규모 있는 서점이 없을 때(최근에야 하나가 생겼는데 그마저도 책이 많은 편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많지 않을 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시의원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지 못할 때 등등. 처음엔 불편하고 낯설었다. 지금은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불편함과도 정이 들었고, 굳은 살처럼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성숙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19년의 세월이 내가 원주에 적응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원주


원주에 살아서 좋은 것도 있다. 집값이 저렴(?)하다. 나는 임대아파트에 4년째 살고 있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임대아파트에서 나오면 원주에서도 내가 살(live) 만한 집은 많지 않다. 원주의 집값도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솔직히 원주에 인프라가 늘어나는 것이 두렵다. 점점 편리해지고 풍성해질수록 집값이 오를까 봐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이 도시가 적당히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머물 집이 남아있을 것 같다.


교통체증도 덜한 편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교통체증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 출퇴근 시간에 겪는 체증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점이 있지만 자차를 가지고 다니기에는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도시도 크지 않아서 30분 정도면 원주의 끝과 끝을 다닐 수 있다.


조용하고 덜 붐비는 편이다. 이건 내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꺼린다. 원주에 사는 동안 카페나 음식점에 사람이 꽉 차서 다시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많은 무리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험도 거의 없다. 내가 서울에 왔다는 것을 제일 처음 느끼는 장소는 강변역 앞 횡단보도다.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면서 건너고, 보행자 신호가 꺼져도 사람이 계속 건넌다.


당분간은 원주에서 살 생각이다. 당분간이라고 말하는 건 ‘어쩌다’ 원주에 정착한 만큼, ‘어쩌다’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비해 부족한 인프라가 많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고 내가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은 다 있는 것 같다. 아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함이 생기거나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없는 상황이 오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 같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주에서 가능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라도 살아보고 싶다. 뭐,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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