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IVF 학사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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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0-07-21 조회5,555회 댓글0건

[소리정음]
어쩌다 만난 천왕마을 이야기 [우리 동네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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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19 두 번째 소리 - 04+05호(통권24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리 동네 이웃살이]


▷ (1) 직업을 말해줘 _ 전전

▷ (2) 뜻밖의 모험 _ 김남산

▷ (3)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이야기 _  남태일

▶ (4) 어쩌다 만난 천왕마을 이야기 _ 서진미 






어쩌다 만난 천왕마을 이야기

- 서울시 천왕동의 천왕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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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 마을회관에서 


 

◆ 서진미(부산여대87) 

부산 해운대를 떠나 11년째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현재는 천왕 마을공동체들의 네트워크인 ‘천왕 마을연합회’와 ‘천왕 마을학교’의 대표로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동네의 작은도서관에서 초등 아이들과 역사책 읽기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나는 2011년 6월부터, 서울주택공사가 천왕동에 지은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인근에 총 12개의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일반분양, 장기전세, 국민 임대 그리고 지금은 행복주택까지 다양한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어르신부터 30~40대, 신혼부부에 청년까지 다양한 세대가 혼합되어있기도 하다. 우리 가정은 1999년 방배동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8번의 이사 끝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1997년까지는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었는데, 잠깐의 수원 생활을 거쳐 1999년부터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천왕동에 오기 전까지를 회상해보면, 나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홀로 육아를 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설움을 여기, 이곳에서 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내가 겪은 우리 동네 이야기 


2011년 2학기, 4학년 딸아이가 전학한 학교는 공교육의 혁신을 위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혁신학교’였다. 나는 그 학교의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이자 학부모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동네 이웃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수차례 만나며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더 나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뜻을 맞춰갔다. 학부모회 구성원들은 학교 안에서의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들과 협력하여 동네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및 복지 시설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활동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렇게 서로 친해지며 학부모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지역 내에서 주민들의 이러저러한 작은 모임들과 만나면서 천왕동의 마을공동체는 시작되었다. 2012년, 천왕동에 처음 입주한 아파트단지 내 작은도서관 1곳을 시작으로 2013년 상반기까지 6곳을 이 지역 주민이자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하나둘 개관하였고, 2013년 하반기부터는 관장들의 교류 모임이 시작되었다. 2015년에는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단지의 작은도서관 2곳까지 총 8곳의 도서관이 협력하게 되었다. 2016년부터는 천도협(천왕 작은도서관협의회)이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 외에도 2012년부터 작은 지역주민모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쓰레기 줍는 ‘봉사모임’, 교회가 주민들의 배움과 쉼을 위해 마련해준 공간 ‘천왕 사랑의카페 문화센터’의 운영모임, 그리고 전통 타악기를 연주하는 ‘풍물단 모임’, ‘캘리그래피 모임’, ‘재봉틀 모임’, 노래하며 힐링하는 ‘동네합창단 모임’, 청소 년활동을 지원하는 ‘엄마아빠들 모임’, 그 중 토요일마다 아이들이 모여 함께 놀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모임’은 다둥이가 많은 이 지역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또는 아이를 키우느라 내가 좋아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동네에 와서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모임들을 만나 이웃과 교류하며 여가를 즐기고 사회적 욕구들을 채워가고 있다. 


2014년 여름부터는 이 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가을에 ‘우리마을프로젝트’라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지원으로 천왕마을축제 ‘천생연분’ 이라는 마을행사를 치렀고, ‘천왕 마을연합회’라는 네트워크 조직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 후로 천왕 마을연합회는 다섯 차례의 마을축제를 함께 치러왔다.


# 코인 노래방 이야기 


오후 4시 30분, 중2 아이들이 어슬렁어슬렁 천왕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천왕 마을연합회 거점인 천왕 마을회관은, 2015년 서울주택공사가 주민들의 건의로 주민들을 위해 10년 무상임대로 내준 공간이다. 이곳은 때론 세대별로 때론 용도별로 이용되는 카멜레온 같은 다목적 공간인데, 2016 년 6월 정식으로 개관하면서부터 오후 4시부터 7 시까지는 ‘철부지들 카페’라는 청소년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 중학교 아이들은 방과 후 집이나 학원으로 가기 전에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이곳에 마을회관의 보물 1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코노(코인노래방)’이다. 코노에서 흘러나오는 청소년 아이들의 생음악이 우리 공간을 가득 채워준다. 


마을회관이 생기고, 코인노래방이 마을회관에 설치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2012년 동네 모임에서 우연히 IVF의 김성우 간사님, 최용석 학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 동네 청소년들을 위해 쉴 공간을 마련하여 봉사하고자 모였던 엄마들과 함께 ‘천왕 청소년멘토단’으로 협력하였다. 김성우 간사님은 재능기부로 우리 마을 최초의 커피학교를 열고, 최용석 학사님과 함께 ‘천왕 사랑의카페 문화센터’ 공간과 주민모임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다. 


김성우 간사님, 최용석 학사님과 나는 천왕 청소년멘토단 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만났다.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기획서를 작성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행정적인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멘토로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카페 봉사 엄마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우리 동네에는 청소년시설과 여가시설이 하나도 없어서 아이들이 노래방, PC방, 영화관에 가려면 차를 타고 다른 동네로 가야 했다. 그동안은 어느 상가에 있는 교회가 무상으로 공간을 빌려줘서 주 1회 ‘청소년 휴카페’를 운영해왔는데, 천왕 마을회관이 생기면서 우선적으로 청소년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청소년 휴카페는 마을회관으로 장소를 옮겨 청소년들이 이름 붙인 ‘철부지들 카페’로 명칭을 바꾸고 주 5회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시설이나 놀잇감이 부족했고 우리는 코인노래방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모사업 예산 중 우리 세 사람과 자원봉사 엄마들의 강사비나 활동비 등은 멘토단에 기부하고 다른 예산도 아껴 돈을 모았다. 대략 3년 동안 300여만 원을 모았고, 2017년 12월에 동네 아버님에게서 코인 노래방 기계를 싸게 구입하였다. 주민들이 자력으로 회관을 운영하고 코인노래방을 마련했기에 큰 시설은 아니더라도 작은 봉사와 애정이 묻어있는, ‘철부지들 카페’만의 이야기가 있는 보물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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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동 마을축제 기획회의
 


# 동네 엄마들의 마을살이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페봉사 엄마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2013년부터 청소년카페 봉사를 목적으로 만나왔다. 2018년부터 청소년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는 체제로 바뀌면서 그중 일부는 한 달에 한번 저녁에 모여 독서, 공연이나 영화 관람, 수다, 하소연 등을 하는 정기 모임인 ‘밤사친(밤을 사랑하는 친구들)’으로, 또 일부 는 가끔씩 생각나면 생존확인을 하는 ‘얼굴 봅시다’ 같은 비정기적인 모임으로 바뀌었다. 현재 나는 이 두 모임에서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만나기 전에는 이쪽 작은도서관 봉사모임, 저쪽 작은도서관 서예프로그램, 또는 학부모회 모임 등에서 동네 주민으로 얼굴을 익히며 말을 섞는 정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다 청소년 휴카페 자원봉사라는 목적을 가지고 모이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2년 동안 매주 수요일,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이 적은 비용으로 쉬다 갈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하면서 카페를 운영해왔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천왕 마을연합회의 다른 모임이나 지인들에게 카페 매상 좀 올려달라고 협조도 구하고 청소년들과 마을축제에 참여하여 간식판매 부스도 운영하면서 마을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카페 봉사로 모여서 자주 만나는 동안 수다도 떨고 운영방법도 모색하다가 또 새로운 모임으로 변신하게 된다. 


봉사를 위해 만나는 동안 몇몇 엄마들은 ‘캘리그래피’라는 공통된 취미를 발견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같은 취미를 가진 다른 엄마들을 영입하여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었다. 같이 모여 필요한 교육도 받고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했다. 그 즈음 청소년카페가 마을회관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새로운 오픈을 준비하던 엄마들은 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카페로 탈바꿈하기로 결정했다. 학생자발성이 생기기까지 당분간 최소한의 개입만 하기로 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이 엄마들은 카페 재오픈을 기다리는 동안 구청의 공모사업을 통해 동아리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고, 작품 활동에 더해 교육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네에서 교육활동을 하거나 동네 밖의 다른 구나 시의 예술 공간에서 작품전시 활동을 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 동네의 발견


천왕동에 정착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 아이는 지금 10대 끝자락의 청소년이 되었다. 초· 중등학교를 벗어나 고등학교에 가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동네 친구들과도 여전히 관계를 이어가며 같이 어울리고 있다. 그들 세대에서도 ‘동네’는 여전히 살아가는데 중요한 공간이다. 특히 연령, 신체의 불편함 정도, 경제수준 등의 면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활 현장인 ‘동네’는 그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높다. ‘이 동네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경험한 동네의 교육생태계적 환경은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삶의 바탕이 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 교회, 학교밖에 몰랐다. 20대까지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한 공간밖에 몰랐다. 그런 나에게 어쩌다 이웃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고, 민낯에 편한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해도 불편하지 않은 이 동네가 소중해졌다. 나와 이웃들은 여전히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의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를 동네에서 조금씩 시도하면서 동네가 주는 유익을 하나씩 하나씩 경험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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