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IVF 학사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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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0-07-21 조회5,157회 댓글0건

[소리정음]
직업을 말해줘 [우리 동네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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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19 두 번째 소리 - 04+05호(통권24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리 동네 이웃살이]


(1) 직업을 말해줘 _ 전전

▷ (2) 뜻밖의 모험 _ 김남산

▷ (3)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이야기 _  남태일

▷ (4) 어쩌다 만난 천왕마을 이야기 _ 서진미






직업을 말해줘

- 성동구 마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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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공학자 교수님께 로봇공학에 대해 배우는 동네 아이들


 

◆ 전전(고려대98) 

“배운 대로 행동하고 믿는 대로 살고 싶다”라 는 IVF후배의 기도제목에 충격을 받아 좌우명 으로 삼고 살아간다. 

요리 못해, 살림 못해, 두 딸을 키우면서 딸바보도 아닌 워킹파파.




여러분은 지금 본인 혹은 자녀의 생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멋진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싶은데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누구를 초대할지, 어디서 모임을 가질지, 장소는 어떻게 꾸밀지, 음식은 무엇을 준비하며, 어떤 프로그램으로 모임 시간을 채울지 등을 고민해 보셔야 할 겁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네요. 예산. 파티를 하려면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고 나는 얼마를 가지고 있는데 돈을 더 구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겠지요. 


이즈음 되면 ‘어? 이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잖아?’라고 느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혹시 본인의 직업을 초등학생에게 소개한다면 어떻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공연기획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초등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는 이런 강의가 매월 한 번씩 이루어집니다. 


흔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을 한 유명인사도 학생들에게 꿈을 향해 달려가길 조언합니다. 그런데 그 “꿈”을 어떻게 꾸는지는 잘 가르쳐 주지 않지요. 제가 사는 동네인 마장동에서는 마을의 아이들이 꿈을 꾸는 걸 돕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 니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그 직업에 대해서 들려주고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모임 <직업을 말해줘>입니다. 2015 년 7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5년 차에 이르는군요. 처음에는 교회 공부방 교사였던 세 사람이 뜻을 모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들의 헌신과 열의가 참 귀합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현재까지 40개에 가까운 직종의 전문 가들을 만나보았습니다. TV 광고 제작자, 한지 공예가, 전문 산악인, 사진작가, 사회복지사, 과학 교사, 영업사원 코칭 담당자, 재난 안전 관리사, 반도체 공학자, 동시 통역사 등등…. 지인 중에 있으면 모를까, 있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겠지요. 교과서나 미디어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와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친구들을 향한 격려와 응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성과 열의를 다하는 선생님이 되어 주신답니다. 


처음 <직업을 말해줘>가 주로 관심을 가진 대상은 중고등학생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자 중고등학생 친구들에게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기 마련일 텐데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듣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참석합니다. 오히려 중학생들은 강의 준비와 진행을 돕기 위한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고등학생이 참석해서 강의 시간 끝나고 개인적으로 선생님들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하답니다. 


각자의 직업에 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강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강의 흡입력이나 전달력의 편차가 큽니다. 비단 우리가 모시는 분들만의 탓은 아닙니다. 대다수 참석자가 초등학생인데 이마저도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평소에 강의를 많이 하던 분들도 어휘 선택이나 직업 소개 내용의 구체성까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 어려워하시지요. 


2017년 어느 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 벤치에 앉아 있는데 <직업을 말해줘> 운영진이었던 우리 교회 집사님께서 저에게 다가와 위의 고민을 토로하셨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토크쇼 처럼 진행해 보시는 것은 어때요?”라는 아이디어를 드린 것이 화근(?)이 되어 제가 진행자로 <직업을 말해줘>에 합류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질문(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을 사전에 강사에게 전달해서 준비를 돕고, 당일에는 분주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 앞에서 강사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은 진행자가 이야기를 쉽게 풀어 정리하면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에 비교적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강의 형태로 훌륭하게 해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학교수님도 초등학생들 앞에서 강의해 본 적이 없으니 자칫 지루해질까 다양한 영상과 사진 자료를 준비하셨지요. 그러나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골고루 섞인 초등 학생들에게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손해사정사나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 같은 직업은 우리 친구들이 이해하기 좀 어려웠던 직업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처음에 소개한 공연기획자가 얼마나 쉽고 명쾌하게 설명을 해 주었는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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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선생님과 함께한 토크쇼(필자는 무대 오른쪽의 사회자)
 


<직업을 말해줘>에서는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어른들도 만나기 힘든 분들을 만납니다. TV에서 보던 리포터, 바둑 캐스터, 팝페라 가수, 유조선처럼 큰 광물운송 선박의 선장, 주한 미군 군무관, 범죄심리 분석가, 등을 만나볼 기회가 흔치는 않지요. 익히 알고 있거나 어렴풋이 알만한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웁니다. 한의사, 수의학 교수, 로봇공학자, 피부과 의사, 경찰관, 소방관, 약사 등등. 간호사를 떠올리면 늘 병원에서 환자를 돌 보는 이미지만 떠올리지만, 의료인으로서의 의미와 병원 외에도 제약회사, 보험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 서 활동한다는 것을 참석했던 친구들은 다 알지요. 


다양한 준비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미를 더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게임과 같은 활동으로 이해를 도왔던 기업신용평가사, 직접 강아지를 데리고 와주신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 소시지를 구워서 다 같이 나누어 먹었던 식육 마이스터, 악기로 놀다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가버린 음악치료 임상가, 참석한 친구들이 직접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미술심리 상담사까지. 가장 인기 있고 시끌벅적했던 시간은 마술사 선생님께서 오셨던 날이네요.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다양한 직업 전문가를 섭외하는 일인데, 다행히 강의했던 선생님들 이 <직업을 말해줘>의 좋은 뜻에 공감하고 지인을 소개해주셔서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개받은 분들도 대부분 기꺼이 바쁜 시간 쪼개어 멀리까지 찾아오십니다. 올해 1월에는 화가 선생님께서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오셨답니다. 


<직업을 말해줘> 운영진의 활동은 이렇습니다. 강사를 섭외하고 강의 준비를 위해 사전 미팅을 합니 다. 토크쇼처럼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하려면 사전 질문지도 준비하지요. 웹 브로셔나 포스터도 만들고, 간단한 기념품과 안내장도 만들어 학교 앞으로 홍보를 나가기도 합니다. 푸드뱅크에서 간식을 지원 받아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장소 섭외가 어려울 때는 교회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서 저희는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답니다. 모두가 부모의 마음으로 말이지요. 장소 사용료나 강의료, 홍보비 마련을 위해서 후원도 받습니다. 요즘은 지역 주민의 자치 활동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는 추세인지라, 기획서를 쓰고 지원사업에 응모도 하고 있습니다. 


어려움도 많습니다. 수준 높은 행사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지만, 한정된 재정과 역량으로 친구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 니다. 우리 친구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직업에는 NASA 직원,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이 있거든요. 일단 꿈은 점점 커지는 것 같으니 잘하고 있다고 생각 해도 될까요? 전문가가 아닌 동네 주민들인지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영상을 만드는 작업,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 홍보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번번이 부족한 능력에 부딪혀 실망할 때도 많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에서도 진로상담이나 전문가 들의 좋은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영상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하는 시간에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도 이것인데, 아무리 취지가 좋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높아도 정작 유익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요즘 참석하는 친구들이 줄었어요. 40여 명이 모여서 집중이 안 되고 정신없다가도, 너무 적게 참석해서 같은 시간에 방송한 올림픽을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회 한 회 진행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기쁘답니다.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도 참석한 친구들이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시 부풉니다. 강의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 두 가지가 있어요. “월급이 얼마예요?” 와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이 언제예요?”입 니다. 그만큼 우리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친구들이 이곳에서 만나고 소개하는 직업 중에 어느 하나를 자신의 진로로 선택하지 않아도 좋습니 다. 앞으로 꿈이 몇 번 바뀌더라도,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이 이어지더라도, 세상에 는 참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있으며 모두 멋진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으 면 좋겠습니다. 


아, 작은 소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고 <소리> 편집부로 연락 주시는 것이요. 


“저기……. 지난번 <소리>에 실린 마장동 무슨 학사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제 직업도 이야기 꺼내면 재미있는 게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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