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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VF 2020-06-03 조회2,498회 댓글0건

[아벱생각]
‘코로나19’ 장기전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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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재식 간사(IVF 전북지방회 대표간사) 


1. 강제 홈스쿨링을 시작하다


 이르면 오늘(3월 30일), 교육부에서 초/중/고등학교 개학일정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매주 혹은 격주 단위로 연장되어 왔기 때문에, 마냥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이 남다르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가 1~2달 안에 마무리될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임시방편적으로 살아왔다.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추세를 살펴보면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코로나19’는 이미 전 세계로 퍼지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상황은 더욱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계획(Plan)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희망 고문’에 빠지지 않고, 긴 호흡으로 안정적인 경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는 4월 6일(월) 개학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틈틈이 책도 읽고, 가정학습도 하고, 냉장고도 열심히 파먹으면서 건강히 지내왔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생활 리듬의 변화이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 9시쯤이면 잠이 들고, 아침 6~7시면 너끈히 일어났다. 하지만 요즘은 해가 일찍 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상 시간이 늦어져만 갔다. 아침을 먹고, 어영부영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밀도 있는 삶이 아닌, 방만한 삶이 이어진다. 그래서 오늘 아침 가족들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자! 이제부터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시작하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하면서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자!” 아내도, 아이들도 선뜻 동의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활계획표를 세우고, 새로운 삶의 리듬을 디자인해 가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우리도 다시금 삶의 동력을 찾아간다. 어찌 보면 강제 홈스쿨링이 시작된 것이지만, 우리 가정에 유의미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그래. ‘코로나19’는 장기화 될 수밖에 없어. 대학은 저마다 개학을 늦추거나, 1학기 전체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겠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사역/삶의 변수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에 따라 우리 사역/삶의 방향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코로나19’ 장기전을 준비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나누려 한다. 어찌 보면 새로운 깨달음, New something은 아닐 테다. 하지만,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별개이지 않은가. ‘코로나19’가 우리 인생에 고난의 언덕을 주었다면, 바라기는 이 시간을 통해서 광야에서 물을 긷고, 우물 속에서 지혜를 찾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2. 장기전에는 체력이 중요하다 – 건강한/규칙적인 삶의 리듬 만들기


 단기전에는 선택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승부처가 어디인지 알고, 그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분별력과 배짱 또한 필요하다. 그 사람이 승부사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승부사는 타고 난다’고 말한다.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럴만한 기질, 깜/능력이 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른데 어찌 그것을 흉내 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장기전은 다르다. 이것은 타고난 재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요인/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맺을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정치인은 타고나지만, 대통령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통해 우리 또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 습관 1, 2, 3은 개인의 자질/성품과 관련한 것인데, 이것은 각각 다음과 같다. ‘습관 1. 주도적이 되어라’, ‘습관 2.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습관 3.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나는 이것이 단지 자기계발서에 적용될 항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살펴보자. 성경 저자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주인은 우리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맡겨 주었고, 그는 오랜 후에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삶을 평가/결산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시작이 있었으면 끝이 있고,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땅속에 주인의 돈을 숨겨두고 지냈던 어떤 사람과 달리, 작은 일에도 충성 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주인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삶의 자세와 태도가 우리 삶을 평가하는 첫 번째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도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주님께 물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다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또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소중한 것을 먼저 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은 향방 없는 열심히 아니다. 급한 일에 쫓겨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따르는 삶이다. 이런 시간이 모이고 모여서 건강한 삶의 리듬, 규칙적인 삶의 습관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이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가 건강한 삶의 리듬을 만들어 낼 때 그것이 우리 삶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 지난 한 주를 돌아볼 때 무엇이 기억에 남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의 공생애 3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요 21:25)”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늘 같은 일만 반복되고, 그것을 우리 입으로 말하기에도 스스로 부끄럽다면 어찌하겠는가? 하루의 시작을 주님 안에서 시작하며, 하루의 마무리를 주님 안에서 돌아보고, 매일의 순간을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는 분명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앞에서 밀도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한다. 


규모 있는 삶, 건강한 삶의 리듬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찰스 험멜,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IVP)’, ‘고든 맥도날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IVP)’, ‘아브라함 헤셸, 안식(복있는 사람)’,  ‘마르바 던, 안식(IVP)

3. 배우고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자기 주도 학습, 셀프 스터디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논어)” 실로 배움이란 즐거운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질문을 던지고, ‘아하!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때. 우리는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배움이란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의 배움/학습이 입시 평가 시스템으로 귀결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 머릿속에 더 많은 것을 외우는 사람, 책상 앞에 오랫동안 진득하게 머물러 앉는 사람. 그래서 점수로 모든 것을 환산하고, 그걸로 사람들의 우열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족집게 과외가 속출한다. 선행학습이 줄을 잇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사다리를 타고 빨리 올라가려 한다. 그게 한국의 교육문화다. 배움의 즐거움은 잃어버리고, 배움의 기술만 난무한다. 스승과 제자라는 인격적인 관계는 사라지고, 기능과 역할로서만 서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주도 학습법을 잃어버렸다. 몸집은 어른인데 사고하는 것은 어린아이이며, 누군가 밥을 차려 주지 않으면 또 떠먹여 주지 않으면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글(‘코로나19’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과 우리의 답변)에서, 본인은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고 나면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될 것이라 하였다. 누군가는 우물에서 물을 기르느라 온몸에 근육이 새겨져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있던 근육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라 하였다.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하였다. 하지만 머리로 깨닫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별개이지 않은가? 머리로 동의하지만, 삶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짝에 쓸모가 없다. 말 그대로 ‘배울 學’ 문자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익힐 習’ 몸으로 익히고 습득하진 못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홀로 놓인 이 시기에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깨닫기 원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 곁에 많은 교보재가 있다. 책도 많고, Youtube 같은 온라인 공간에도 좋은 강연과 배움의 기회들이 열려 있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많은 편이다. 성경을 꾸준히 읽어갈 수도 있고, 성경 필사를 할 수도 있고, 캘리를 배워서 말씀 노트도 만들 수 있다. 우리 마음의 원하는 바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채롭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익히길 원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가?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고, 그것을 깨우쳐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지식, 진리의 보화가 될 것이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지만, 시간과 환경의 제약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만의 학습 공간(배움터)을 만들어 보자. 묵상의 훈련, 기도의 훈련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영적 성숙과 훈련을 위해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리차드 포스터, 영적 훈련과 성장(두란노)’, ‘김영봉, 사귐의 기도(IVP)’ ‘헬렌 세페로, 내 영혼을 위한 일기쓰기(IVP)’, ‘파커 팔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IVP)’.

cf. 시냇가에 심은 나무(IVP 묵상지)와 성경 읽기는 기본이겠지?^^

4.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 삼겹줄 효과


 오래달리기를 하다 보면, ‘사점(死點) - 몸속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가 극단적으로 부족해져서 죽을 고비에 이르는 점’을 만나게 된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고,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그 고비를 통과하고 나면 황홀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일명 ‘second wind(두 번째 바람)’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경험이 더할수록 그 사람은 Long run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훈련할 때마다 옆에 누군가를 두곤 한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러닝 메이트(Running Mate)라고 부르는데, 성경은 이를 가리켜 ‘삼겹줄’이라 표한다. 그리고 전도서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9-12)”


 그리고 본인은 지금이야말로, 이 말씀을 살아있는 진리로 학습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19’로 한 달여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보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만남이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다며,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이 이렇게 귀한 줄 몰랐다면서 그리움을 표한다.

 그런데 정작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전화기를 붙잡기까진 왜 이렇게 주저하게 될까? 그것은 우리 안에 이중적인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관심은 받고 싶지만 관심을 표현하기엔 낯설고, 비상상황 시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많은 것이 미숙하다. ‘그 사람에게 연락해도 될까? 내가 그 친구랑 그렇게 친했던가?’ 그렇게 자기를 검열하고, 통화버튼을 누르기까지 수차례 망설인다. 또 정직한 나눔을 하려면, 나를 Open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용기가 나질 않는다. 지금 내 모습도 이렇게 별론데,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까? 마음의 원이 클수록 외로움 또한 짙어져만 간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혼자 힘으로 이 터널을 지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족 공동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언제든지 편히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사람은 가족이 더 힘들 수도 있다. 다만,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나누는 그런 친구 말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며, 서로를 향해 격려할 수도 있고 책망할 수도 있는 진짜 우정 관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안정된 공간 안에서 ‘일상에서의 건강한/규칙적인 삶의 리듬’을 만들어 가며, ‘자기 학습 공간에서 누렸던 유익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진짜 공동체(Community)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다시 물어본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진실한 관계가 있을까? 아니, 우리는 정말 그러한 가족/공동체를 소망하고 있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거기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더불어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마중물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외침이 다른 이들의 공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두운 밤 한적한 마을에서 ‘컹컹’ 울부짖는 강아지 한 마리가 떠오른다. 여기서 ‘컹컹’ 짖으면, 저기서도 ‘컹컹’ 짖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컹컹 –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컹컹 –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어쩌면 누구나 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소리를 낼 수 없어서 입을 막고,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의 성숙을 위해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여러 책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기본이 되고, 나눔/모임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래리 크랩, 격려를 통한 영적 성장(복있는 사람)’,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IVP)’, ‘길버트 빌지키언, 공동체(두란노)’, ‘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대한기독교서회)’

5. 나아가며 – 아끼다 똥 된다


 글쓰기에 재주도 없는 내가 이렇게 긴 글을 연달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증폭시키고, 굳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다. 어떻게든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이 글이 케케묵은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게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길 바란다. 다만, 아끼다 똥 되지 않기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컹컹’ 소리를 내어 본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출처 : 전북지방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ivfjb/221911494555)

*이 글은 전북지방회 4월 소식지에 있는 정재식 대표간사의 칼럼을 퍼온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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