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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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1-10-29 조회6,536회 댓글0건

[소리정음]
코로나 기간, 두 아들과 함께한 '내 집 여행기'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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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21 네 번째 소리 08+09호(통권257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내 방, 조금은 열린 공간 _ 국효숙

 내 방에서 버려지는 것들 _ 채한울 

 '나의', 아닌 '우리의' 공간 _ 박중성 

 코로나 기간, 두 아들과 함께한 '내 집 여행기' _ 이수진







코로나 기간, 두 아들과 함께한 '내 집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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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거실
                                                                                                                                                                                             


◆ 이수진 

95학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부터 4년간 월간 <대학가>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부’에서 <청소년 매일성경> 디자인을 했고, 남편의 유학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하이드팍한국학교’를 운영했습니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미술치료학을 전공하고 아동과 성인을 위한 미술치료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엄마가 안아주는 걸 좋아하는 중3 아들, 동글동글 너무 귀엽고 엄마를 닮은 초5 아들, 싸우고 또 싸워도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건 2019년 2월쯤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집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있고 선산들이 모여 있는,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버스도 자주 오지 않는 외진 곳에 있는 교회 사택이다.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부목사로 일하게 된 교회의 사택이다. 다세대 빌라의 3 층, 방 두 개, 작은 거실, 복도식 부엌 화장실이 있는 작은 평수다. 결혼 후 긴 외국 생활이 끝나고 한국에서 가족이 살게 된 최초의 집이기도 하다. 좁은 공간에서 4인 가족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 위해 방의 크기를 재고 모든 가구를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러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비교적 안정되었을 때 코로나가 찾아왔다. 좁은 집을 더 잘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돌아보니 코로나 기간에 중3, 초5인 아이들의 방과 거실에 가구 배치를 새로 했고 몇 가지 가구를 구매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나는 이 집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옥상을 나의 카페로 사용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 등교 후 가던 카페가 있었다. 싸고 맛있고 조용해서 커피도 마시고 공부도 했다. 프리랜서로 출판 일을 하는 나는 주로 오전에 그곳에서 일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이런 루틴이 사라졌다. 아이들의 등교는 중지되었고 카페 사용도 불편해졌다. 내게 아침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루틴이자 쉼인데.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마시는 커피는 쉼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면서부터 커피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 커피를 갈고 나만의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옥상에서 커피를 마셨다. 하늘도 보고 집 뒷산도 보고 코로나로 인해 멈춰 버린 것 같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곤 했다. 멀리 방화대교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커피를 마시고 나면 좀 마음이 쉬어졌다. 그러면 다시 아이들과 오후를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따로 또 같이 6인용 식탁


# 보드게임용   

코로나가 시작되고 남편이 사역하는 교회 모임이 많이 취소되었다. 급기야 모든 모임이 중단되니 아빠의 퇴근이 빨라졌다. 미국에서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한국에 와서는 교회 일이 많아서 자주 하지 못했던 가족의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와 놀지 못했던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족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게임을 하면서 큰아들이 음악을 선곡한다. 스피커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때로는 아빠가 좋아하는 곡, 때로는 엄마가 좋아하는 곡, 때로는 서로 듣고 싶은 곡을 들려 달라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6인 식탁을 산 이유는 좁은 거실에서 모든 가족이 공용으로 사용할 책상이 필요해서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나는 책상에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 거실은 그림 그리기에 너무 불편했다. 작은 화실로 쓸 방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코로나의 시작으로 아이들도 주로 집에 있게 되고 다니던 대학원 도서관은 계속 출입이 제한되고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도서관 갈 일이 점점 없어졌다. 원래는 도서관 가서 논문 쓰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논문은 미뤄졌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계속되니 나는 이 식탁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져야만 했다. 


구석에 노트북을 두고 읽어야 할 논문을 쌓아 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 집중을 못 할 것 같았는데, 어디 골방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았는데, 하다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집중할 곳을 찾아서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 식탁에서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이제는 주로 작은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할 때 이 식탁을 사용한다. 그러면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내 일을 한다. 슈퍼바이저에게 보낼 상담 보고서를 쓰고 그날 있을 상담 내용을 준비한다. 최근에 열린 상담학회는 온종일 줌으로 열렸다.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집에서 참여했는데 이젠 이 모든 것이 익숙하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옆에서 나는 내 일을 한다. 쉬는 시간에 밥도 먹고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학회에 참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어떤 내용을 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점점 더 알게 되었다. 집에 하루 종일 있게 된 두 아들과 엄마는 이렇게 공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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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서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책장 


박사학위를 마친 남편도 책이 많지만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책이 더 많았다. 지금의 책장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수 없게 되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가 읽을 책들을 구매하게 되었고, 덕분에 책은 조금씩 더 늘어났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 배열이 몇 번에 걸쳐 바뀌었다. 모든 가족 이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 있는 책장은 가족의 눈 높이와 키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집에서 대부분 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남편의 책은 가장 위 칸으로, 거실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고 책을 봐야 하는 둘째의 책들은 손닿기 좋은 곳으로, 중간쯤의 많은 부분은 주로 내 책으로 채워져 있다. 큰아이가 읽었지만 작은아이는 관심 없어 하는 책들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었다. 이제는 읽지 않는 책들도 누군가에게 주었다. 버리고 채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은 나와 둘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장이 되었다. 책장에 책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린 그림과 큰아이의 그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런 책장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수집한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 가족의 공부와 관련 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그냥 좋다. 우리 가족 모두의 관심사와 필요, 배움의 작업물들이 쌓여가는 곳이다. 


부엌, 노동의 공간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자주 사용한 곳이 부엌이다. 그 덕에 가전제품이 늘었다.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최고의 고민이었다. 매번 요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냉동식품을 많이 먹을까 싶어서 안 사던 에어프라이어를 샀고, 작은아이가 요구해서 베이킹을 위해 베이킹용 스탠드 믹서기를 샀다. 노동을 좀 더 편하게 하려고 도구를 샀더니 물건 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작은 조리대를 대신할 아일랜드 탁자를 샀다. 노동을 편하게 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노동이 지치지 않게 물건들의 위치를 여러 번 바꾸었다. 가장 자주 쓰는 물건과 안 쓰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에게 부엌은 노동의 공간이다. 좁은 부엌은 노동하기에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이 노동의 공간이 싫을 때도 있다. 구석구석 신경을 쓰곤 했지만, 여전히 가장 불편하고 가장 힘든 공간이다. 


내 방은 뒹굴뒹굴 쉼터, 아이들 방은 게임 방 


나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라 아이들에게 “엄마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 있을 때가 있다. 이 방은 뒹굴뒹굴하면서 주로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을 보거나 낮잠을 자 면서 쉬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아이들과 내가 쓰는 침대는 똑같은 브랜드의 침대이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침대가 더 ‘플러피(fluffy)하다’고 표현한다. 엄마는 혼자 있고 싶다 해도 아들 둘은 반드시 문을 살짝 열고 엄마가 뭐 하나를 살피러 오곤 했다. 중3과 초5인 남자아이들이 그렇게 나를 찾아올 때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제 알아가고 있다. 엄마가 홀로 방에서 쉴 때 자신들에게 무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 방은 단출하다. 침대 두 개, 간단한 행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임용 PC. 큰아이가 온라인 수업 때 쓰기도 하지만 아이들 방은 단연 PC 게임방이 가장 큰 용도이다. 


좁지만 함께 있는 공간


내 집은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인다. 방 두 개에 좁은 거실과 복도식 부엌. 이 공간에 내게 필요한 것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처음에 이사 올 때는 ‘좁아서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했고,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는 좁은 집이 불편하고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별다른 불편 없이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이 좁아서였을까, 아이들과 나는 서로 이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큰아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온라인에서 어떤 친구들과 사귀고 있는 지 등. 집이 좁아서 더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드라마와 어떤 예능을 얼마나 보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작은아이는 엄마가 드라마와 예능 중독이라고 계속 핀잔을 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같은 테이블에서 큰아이는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고, 퇴근한 아빠는 거실 의자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며, 바로 앞의 아이들 방에서 작은아이는 잠을 청하는 중이다. 잠이 안 온다고 왔다 갔다 하며 엄마에게 투정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나는 이 집이 더 좋아졌다. ‘집이 크면 방 안이 안 보이고 서로가 뭘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은 비밀이 좀 적은 것 같다. 어떤 날은 각자의 방에 각자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각자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함께하고 있어서 좋다. 


나와 아이들 각각의 필요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위해, 좁은 집은 몇 번에 걸쳐 바뀌었다. 나는 비교적 내가 만들고 바꾸고 한 이 공간에서 많은 것을 누렸는데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별다른 불평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좋았을까?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너희들에게 지금 우리의 공간은 어떠한지, 불편한 건 없는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나와 아이들은 좀 더 함께했고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욱 알게 되었다. 좁지만 함께 하기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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