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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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1-10-29 조회477회 댓글0건

[소리정음]
내 방, 조금은 열린 공간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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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21 네 번째 소리 08+09호(통권257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 내 방, 조금은 열린 공간 _ 국효숙

▷ 내 방에서 버려지는 것들 _ 채한울 

▷ '나의', 아닌 '우리의' 공간 _ 박중성 

▷ 코로나 기간, 두 아들과 함께한 '내 집 여행기' _ 이수진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진 요즘,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방이라는 공간에 가까워졌습니다. 

방은 답답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둘러보면 평소에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 했던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추억에 젖어들기도 하고, 쉼이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나만의 공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의 공간이기도 하겠지요. 


이번에는 다양한 ‘내 방 여행법’을 모았습니다. 세계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어려운 요즘 같은 때, 

<소리>를 통해 서로의 방을 여행해보고, 집 안을 둘러보며 내 방도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방, 조금은 열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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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효숙 (시립대94) 

20년째 넉넉지 않은 출판사의 살림살이를 도맡은,  

어딘가로 튀고 싶지만 사무실 탈출을 잘 하지 못하는 ‘프로 야근러’.  

가끔 머리 색 바꾸는 걸로 일상의 재미를 찾는 사람. 




아침에 일어나 확진자 현황을 확인하고, 덥지만 마스크를 챙겨 쓰고 출근했다. 이렇게 한 지 1년 반이 더 지났다. 매년 연초면 올해는 어디로 언제 여행을 떠날까 하고 달력을 쳐다보며 행복한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방탄소년단 뉴욕 스타디움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고 신나서 예약해둔 항공권을 코로나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취소한 이후로 휴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다. 매 번 여행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대체 언제나 여행을 갈 수 있냐고! 의미 없는 넋두리를 할 뿐이다.


작년에 방탄소년단은 코로나로 인해 연초에 세웠던 모든 투어 계획이 무산되고 좌절감도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으로 계 획에 없던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온 <BE> 앨범은 코로나 시국을 견뎌내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들로 채워진 앨범이었다. 그 앨범에서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이라는 곡은,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그 공간 자체를 줌인하여 살피며, ‘익숙한 공간을 특별하게 보면서 생각을 전환해 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다.  


11평 남짓 넓지 않은 내 공간을 한번 들여다보려고 한다. 뭐가 잔뜩 들어차 있다. 비우며 살기, 미니멀 라이프, 이런 말들과는 거리가 먼 욕망 덩어리인 나는 뭘 많이도 쟁여놓고 산다. ‘비워야지, 비워야지’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있지만, 쌓여가는 짐들에 치여 살면서도 사고 또 사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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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작가가 그려준 필자의 초상 




넓지 않은 집 벽면 곳곳엔 액자들이 꽤 많다. 그 중 가장 아끼는 액자는 친한 작가가 그려준 내 초상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내가 사람인지라 사람이 그나마 이해가 된다”는 이유로 인물화를 많이 작업하는 작가이다. 회사 일로 알게 되었다가 사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종종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내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불쑥 연락을 해왔다. 그간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그녀가 그려왔던 도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 이어 새로운 프로젝트인 ‘한국인 시리즈’의 첫 사람으로 나를 떠올려준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왜 나를 그리고 싶었는지 작가가 설명하는데 나를 과하게 매력적으로 보는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작가의 손에 내가 그려진다는 낯선 경험이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이 그림은 우리 집에 있을 그림은 아니었는데(그림 가격이 선뜻 구매 하기엔 많이 부담스러운 금액인지라), 여차여차 하여 지금 내 방 한편에 걸리게 되었다. 


매일 거울을 보며 나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이 그림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어 나도 내 시선에 그 시선을 한 번 더 입혀 나를 바라보게 된다.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혹은 진짜 나, 이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인지, 그 친구가 이야기했던 만큼 그렇게 괜찮은 인간인지, 그림을 보면서 나를 살핀다. 


짧게나마 이 작가에게 그림을 조금 배웠고 다른 그림 수업도 들으면서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려왔다. 언젠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어떤 작가의 여행을 그림으로 기록한 책을 로마의 한 서점에서 샀다. 그 책을 보고 나도 여행을 그림으로 기록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림을 시작한 후, 어설프지만 몇 점을 완성하면서 하나둘 벽에 걸어두었다. (대단하지 않은 것도 액자에 끼워 걸어두면 꽤 괜찮아 보인다.) 파리 여행 갔다 들렀던 오베르에서 사진으로 담아온 오베르 교회를 판화 작업한 것, 잘츠부르크의 거리 풍경을 담은 수채화, 이렇게 내 여행의 기록은 내 방 한쪽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내 방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자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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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의 거리 풍경을 담은 수채화 


 


이제 혼자 산 지 십수 년이 지나 누구와 같이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누구를 돌보는 일을 잘 못 한다. 집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나 외에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몇 가지 식물뿐. 사실 수없이 많은 식물이 우리 집에 오면서 명을 달리했다. 초록초록한 무언가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에 욕심내서 화분들을 사지만, 물론 정말 키우기 쉽다는 것들만 골라서 사지만, 지! 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놈들에게 난 그렇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주지 못한다. 처음 몇 달은 유념해서 물도 주고 관심도 주지만, 살짝만 시야에서 벗어나도 관심을 끄는 몰인정한 사람이라서인지 먹고 사는 데 치이다 보면 나에게 와 “물 줘”하고 직접 말을 걸지 않는 초록이들은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그간 우리 집을 거쳐 간 수많은 초록이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아직 살아 있는 몇 아이들은 좀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물주는 날 맞춰 알람이라도 맞춰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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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돌봐줘야하는 초록이들 




그래도 이 공간이 오직 내 것이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결혼 혹은 룸메이트처럼 계속 함께 살 사람이 생기는 건 큰 부담이고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 건 아주 많은 고민이 필요할 테지만, 그래도 잠깐씩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늘 한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이 작은 방에는 옷가지 들을 잔뜩 쌓아두고 조금 넓은 방에 침대와 책장 들을 놓고 썼다. 그런데 누구라도 집에 초대하려면 이런 공간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침대를 작은 방으로 옮겼다. 아주 작은 침대이긴 하나 혼자 침대를 옮긴다는 건 거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푸하하! 그러나 난 꽤나 힘이 세다. 좁은 방에 침대 집어넣기 성공!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큰 테이블도 사서 빈방 한가운데 놓았다. 많으면 한 여섯 명 정도까지 둘러앉아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겠다. 물론 이 테이블은 주로 책이나 잡동사니들로 종종 어지럽혀 있지만 말이다. 


대청소가 필요하다 싶으면 사람들을 초대한다. 누구를 초대하는 것이 목적인지 청소가 목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철저하게 레시피에 의존하는 사람이지만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이 맛난 것을 먹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정성껏 식탁을 차린다. 한 상에 둘러앉아 먹으며 수다 한바탕 떨고, 그런 사귐의 시간을 갖는 데 내 방이 사용되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할 걸 생각하다 보니, 혼자 살지만 접시도 많고 찻잔도 많고 주방 살림도 한가득이구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누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그냥 보관만 된 채 조용히 잠자고 있는 이 아이들을 꺼내 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시절이 좋아지면, 그래요, 그땐 우리 집에서 만나요.  


침대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곳은 여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소파일 거다. 퇴근해서 아무 데나 가방을 던져놓고 털썩 주저앉아서 ‘멍때리기’를 하는 자리다. 주말 오후 책 한 권 들고 길게 누워 읽는 둥 마는 둥 잠깐 낮잠에 빠지기도 하는 자리다. 불편한 관계로 상한 마음, 답을 찾지 못해 짓누르는 문제들, 화나고 억울했던 감정들을 하나님께 쏟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나님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너무 종종 그저 쏟아내기만 할 때도 있다. ‘조용히 앉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뵙기까지 머물러 있지 못하는 한없이 가벼운 영혼이구나’ 하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시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 그런 것은 차마 생각지도 못 하고 그저 내 문제, 나와 연결된 내 주위 사람들의 문제만이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제대로 아뢸 수 있으면 좋겠다.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이 공간이 기도의 자리가 된다면 좋겠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보면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한 수많은 책이 책장에 꽂혀있다. 좋아하는 아이돌 굿즈들이 즐비하고, 프로젝터와 큰 스크린까지 설치해서 좋아하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집이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 미칠 거 같아 생각이라도 바꿔서 좀 극복해 볼까’가 아니라 ‘집에 있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다’며,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인별그램 감성의 이쁜 사진 전시하는 듯한 모양새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생긴다. 쉼과 회복을 위해 적절하게 필요들을 채우는 것과 그 에너지를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것, 이 사이에서 긴장하며 나 스스로를 살피자는 힘이 없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아무리 집순이라고 해도 마스크 벗어 던지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하루 확진자 천 명이 넘어가는 이 상황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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