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IVF 학사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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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0-07-21 조회5,413회 댓글0건

[소리정음]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이야기 [우리 동네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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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19 두 번째 소리 - 04+05호(통권24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리 동네 이웃살이]


▷ (1) 직업을 말해줘 _ 전전

▷ (2) 뜻밖의 모험 _ 김남산

▶ (3)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이야기 _  남태일

▷ (4) 어쩌다 만난 천왕마을 이야기 _ 서진미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이야기

- 부천 역곡동 아빠들의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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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 "아빠, 어디가?"


 

◆ 남태일(어.울림교회 목사)

'품위 있는 삶'을 빚고 싶은 아저씨. 두 딸이 웃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아빠. 

부천 역곡동 에서 '언덕위광장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어.울 림교회'의 목사로, 때로는 건축현장 일꾼으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로바니에미에 오두막을 짓고 만화방을 하는 것이 꿈인 지구별 여행객입니다.



어찌어찌하다 동네에서 여러 색깔의 아빠 모임을 시작했다. 5~6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가운데 얼마는 사라졌고, 몇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다행히 한두 모임은 여전히 잘 모이고 있다. 작년 10 월에 시작한 막내 모임인 ‘서클 하는 아빠들’은 신선하고 부흥(?)할 조짐도 있다. 가끔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다.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심지어 존경한다고 하시는 분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존경은 해도 부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당연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서 더 궁금해 하신다. 허나 딱히 들려줄 말이 없다. 그냥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요?”라는 반문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라 하시니 좀 지루해도 들어주셔야 한다.   


# 교회 개척


큰 걱정 없이 직장 생활을 하던 2000년 초였을 것이다. 어느 날 산속 깊은 옹달샘에 훅 던져진 돌멩이처럼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잘 사는 것인가?’하는 질문이 별일 없이 사는 나에게 던져졌다. 생각이 꽂히면 실현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끝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이 질문은 꽤나 재미난 소재였다. ‘그래, 제대로 산다는 것은 뭘까?’,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폼 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 폼 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은 결국 ‘성경을 공부해 보자’ 하는 생뚱맞은 결론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 성경을 배워보자 하고 조금 늦은 나이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이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 전도사, 강도사를 거쳐 2007년에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되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은 찾았다. 허나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하는 실제적 질문이 나에게 다가와 답을 내놓으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커닝도 할 수 없고, 나만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답안 을 써야 하는 일대일 맞춤 질문이지 싶다. 답안 작성의 시작으로 2015년 1월, 부천에서 ‘어.울림교회(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을 시작했고 다행히 아직도 그곳을 통해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 어.울림 교회?


어울림이 아니라 ‘어.울림’이다. ‘어’ 다음에 마침 표가 있다. 처음에는 마침표 대신 느낌표를 생각 했지만 너무 튄다 싶은 소심한 마음에 느낌표 대신 마침표를 넣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동하며 터져 나오는 감탄사 ‘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울림’은 공명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공명하는 ‘울림’이다. 하여 ‘어.울림’ 교회는 먼저 수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마음에 공명하여 반응하는 공동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공명한 자들이 삶의 반응으로 모든 창조세계와 어울려 사는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어울림’이다. 조금은 독특한 어.울림교회의 이름에는 이런 이중적 함의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싶지만, 우리가 가는 이 길이 긴 호흡이고 여전히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보면 잘 지었다 싶다.   


#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어.울림교회는 7대 핵심 가치를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특별히 ‘성도의 삶-하나님 나라 백성에 합당한 삶을 사는 공동체’, ‘사회적 책임-정의와 자비는 하나님의 속성이자 인간의 본분임을 믿고 실천 하는 공동체’, ‘연합-마을 공동체와 교회 연합운동에 사명과 책임을 갖는 공동체’가 있다. 이를 위해 교회 공간은 처음부터 <언덕위광장>이라는 작은 도서관으로 조성하여 운영을 하고 있다. 도서관이 있는 것 자체로 지역에 의미가 있겠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도서관을 통해 동네 분들을 만나고, 만난 분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녀 양육’, ‘관계’ 라는 두 주제는 언제나 뜨겁다. 다양한 방법과 관점이 있고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하지만, 결국 양육의 끝은 ‘내 자녀가 좋은 대학 가서 잘 살면 좋겠다’로 수렴한다. 이를 위해 최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양육의 으뜸 덕목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에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우리 자녀들이 과연 행복할까? 모두가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진학하면 좋겠지만 그건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당연히 친구와 끝없이 경쟁해야 하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줄 세워지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나누고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여 학교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강좌를 도서관에서 진행하면서 도전과 용기를 얻어 동네 분들과 정기모임을 시작했다. 즐겁고 힘이 되는 모임이었다. 자녀와 가정, 학교에 대한 고민을 더 나누면서, 이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서로 연대하여 기존의 가치에 저항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모임을 통해 조금씩 동네 분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적지 않고, 갈등 상황에서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었다. 자녀, 가정, 학교 나아가 지역과 사회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갈등을 풀고 후에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회복적 정의’를 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공동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가해자를 처벌하여 갈등과 문제를 해소한다. 회복적 정의는 이런 ‘가 해자 처벌 중심의 엄벌주의(응보적 정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당사자들의 맥락이 드러나서 억울하지 않도록 공동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모든 제도적, 문화적 노력의 과정이 회복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큰 기둥이 어.울림교회와 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에서 동네 분들과 함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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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빌딩센터 출범식 (필자는 맨 오른쪽)

 

# 피스빌딩센터


‘회복적 정의’는 단순히 소통의 기술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이고 ‘관점의 변화’이기 때문에 두어 시간의 강의로 회복적 정의에 익숙해질 수 없다. 그래서 ‘회복적 정의’를 소개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소개 강의 이후에 전문가를 모셔 자원하는 지역 주민들과 워크숍을 진행한다. 워크숍은 기본 1~4 과정까지 있는데 한 과정이 6일, 21시간으로 진행된다. 워크숍 기본과정을 모두 이수하려면 총 84시간이 걸린다.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각 학교 학부모회를 통해 학부모 교육으로 회복적 정의 소개강의를 했다. 이런 강좌를 만들기 위해 도서관 이름으로 경기도와 부천시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 등에 지원하여 재정을 마련했다. 2년 동안 워크숍과 청소년평화전문가 과정, 조정자과정 등을 통해 회복적 정의를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이 생겼고, 그 가운데 21명의 활동 회원을 둔 단체 ‘피스빌딩센터’가 2017년 4월에 출범했다. 도서관에서 하던 ‘회복적 정의’ 활동은 이제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피스빌딩센터가 중심이 되어 진행한다. 센터의 회원들은 학교운영위위원회, 학교폭 력자치위원회, 학부모회 등에서 활동하고, 지역 의 쉼터, 또래 조정, 대화 모임 등에 참여하고 진행한다. 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주 1회 다양한 활 동으로 존중과 배려의 평화감수성을 배우는 ‘두빛 나래평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아빠가 없다? 아빠가 있다!


‘양육의 고민, 갈등을 평화롭게 전환하여 행복한 가정과 학교, 지역과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 에서 정작 중요한 당사자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로 아빠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아빠들은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진짜 그렇다!) 로 구성원이지만 구성원 아닌 존재로 있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돈 벌어 오시는 분’이다. 하여 모든 활동에서 당연히 열외 된다. 그러나 아빠도 함께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회복적 정의를 통해 상호 존중하는 가정으로 만들어가길 원하는 엄마들이 아빠와 함께 양육하는데 어려움에 부딪친다. 아빠들이 바쁘고 지친 상황에서 여유가 없다 보니 마음은 원하나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겨우 시간을 만든다 하여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학교 운동장에 나가도 아빠는 운동장 한 바퀴 돌면 앉아서 핸드폰을 본다. 아이는 핸드폰을 보는 아빠 근처에서 혼자 논다. 아이와 함께 있지만 교감하기 쉽지 않다. 엄마가 “여보, 우리 둥글게 앉아서 이야기해요”하면 아주 어색해 한다. 마지못해 이야기를 하면 나눔이 아니라 지시나 훈계가 되기 십상이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존중하고 소통하는 평화적 가정을 만들어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 아빠들을 만나 아빠들끼리 이야기를 해보면 마음이 열려 있다. 아빠들도 당연히 행복한 가정을 원하고 자녀들과 더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정작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해서 자신들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아빠들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는 피스빌딩센터 정기모임을 하면서 엄마들의 바람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피스빌딩센터 회원가정의 아빠들을 중심으로 저녁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주일 오후 아빠들만을 위한 특강을 진행했다. 저조한 참석이었다. 15명 정도는 오겠지 했지만 겨우 5명 참석. 맥 빠진 특강이다. 당연히 후속 모임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주제를 바꿔가며 엄마들에게 아빠들 좀 보내라고 읍소했다. 참석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아빠 프로젝트’를 열어 가정에 대한 강좌부터 노동, 인권, 자본, 토지정의, 젠더 등 아빠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로 세미나 및 특강을 진행했다. 그리고 참여한 분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작은 모임들이 지역에 만들어졌다. 


아빠들의 상황이 천차만별이기에 모임은 근황이 나 자녀와 가정, 직장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형태로 진행된다. 재밌는 것은 모임 자체로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는 것이다. 특정 이해관계를 위한 모임이 아니니 편한 시간이 된다. 하여 아빠들의 수다를 막기 어려울 정도다. 때때로 의기투합이 되면 작당을 한다. 작게는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함께 놀기’부터 크게는 ‘아빠 어디가?(아빠와 자녀가 함께 하는 1박 캠프-학교 단 위로 진행)’, ‘추억캠프(6학년 친구들과 학교에서 하는 캠프)’등과 같은 규모 있는 활동도 같이 한다. 물론 이 작당에는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프로 그램이 깔려 있다. 


이런 활동 후에 아빠와 자녀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기대 이상이다. 허나 그 약효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사회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연대의 즐거움이 사회구조에 저항하고 변혁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옆집 아빠들과 할 수 있는 일,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일, 가 치 있는 삶을 빚어가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어 쩌면 아직도 아빠들 모임이 있다는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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