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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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0-07-21 조회5,349회 댓글0건

[소리정음]
이직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이직(移職)의 바람이 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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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19 첫 번째 소리 - 02+03호(통권242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직(移職)의 바람이 불 때]


▷ (1) 나는 왜 프로 이직러가 되었나_연응찬

▷ (2) 본부장과 팝콘튀김러 사이_김효주

(3) 이직을 준비하는 당신에게_김현수

▷ (4) 커리어와 이직에 대하여_오규덕 






이직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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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수 숭실대87 

학부에서는 경영을, 대학원에서는 인사관리를 전공했다. 

자발적으로3번의 직장을 옮겼으며, D그룹, OO기금을 거쳐 현재는 S그룹에서 18 년째 인사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남서울 IVF 이사로 섬기고 있다. 




1996년.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해다. 학번에 비해서는 늦은 취업이었다. IVF활동을 빙자(?)한 5년간의 대학생활, 남들보다 긴 군대생활(학사 장교), 그리고 군대 도피성 대학원진학 등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때의 한국 경제는 1998년 IMF 위기 이전으로 한창 성장기였다. 회사도 골라서 갈 수 있었다. 나는 경영학 전공에 장교 출신이라서 더욱 유리한 입장에서 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각 회사가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같은 날짜에 동시에 전형을 진행했다. 나는 H그룹을 선택했는데 높은 연봉과 성장 가능성이 강점이었다. 그러나 면접을 보러 갔더니 뜻밖에도 영어 인터뷰가 있었다. 당시 나는 군복무 중이었고 아무 정보도 없이 면접을 보러 간 것이어서 영어 인터뷰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미련 없이 바로 나와 D그룹 면접을 봤고, 합격하여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룹 연수 후에 금융 관계사로 발령을 받았다. 가고 싶었던 종합상사가 아니라서 약간은 실망했지만 금융분야다 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거기에 만족했다.


나는 영업파트로 발령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대리 점 영업파트를 담당했는데, 일은 많지 않았다. 문제는 실적이었다. 영업은 모든 것을 실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신입사원이었고, 또 내가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영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한가한 반면, 아침과 저녁시간은 실적회의로 바빴다. 회의에서 실적이 나쁘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존심도 상했다. 회사선배를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또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었다. 한마디로 미래가 안보였다. 그래서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입사 6개월 시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조직에 와서 위기를 겪는 시점이 6개월째, 3년차, 5~6 년차인데, 나도 그 6개월째에 첫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침 군대에서 받았던 원서가 생각났다. 바로 국 책금융기관인 OO기금이었다. 다시 원서를 냈고 두 번째 회사에도 어렵지 않게 입사했다. 국책금 융기관의 강점은 금융권 수준의 높은 급여와 탁월한 안정성이었다. 일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워 라벨(Work-Life Balance)’이 매우 높았다. 


OO기금에서는 순환근무 형태로 근무가 이루어 졌다. 신입사원의 경우, 먼저 지점 근무 후에 본 점 근무를 해야 했다. 나도 첫 근무는 영업점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첫 번째 회사와는 전혀 다른 ‘영업’이었다. 영업점은 엄밀하게 따져서 지역 거점으로 해당 지역의 기업들을 관리하고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곳이었다. 나는 신입사원이기에 지점에서 현금관리 등 궂은일도 많이 담당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접대문화’였다. 기업이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서는 OO기금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기업에게 자금은 혈액과 같다. 이 혈액을 저렴하게 공급해주는 조직에 기업은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새 지역의 기업가 들에게 ‘영감님’이 되어있었고, 또한 ‘접대’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리’였겠지만, 내 신앙의 양심으로는 그 현실이 무척 힘들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1년쯤 되었을 때 다시 회사를 옮길 생각을 했다. 다행히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본점 기업지원부서에서 사내공모가 있어 지원을 했는데 합격한 것이었다. 그래서 1년 만에 본점으로 이동하는 행운을 얻었다. 신입사원이 사내공모에 합격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입사 1년 만에 본점에 가는 것도 내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이동한 본점에서의 3년은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고 자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성과도 많이 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인사고과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기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문제의 발단은 내가 회사의 인사제도 개선에 대해 건의를 한 일이었다. 인사전공자였던 나는 순수한 마음에 이사장앞으로 만들어진 건의 이메일 계정으로 ‘인사고과와 승진을 연계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보냈다. 다음날 인사부에서 전화가 왔고, “네가 뭔데 그런 내용을 이사장에게 이메일로 보내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런 내용을 건의하라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었던가? 나는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인사발령이 났다. 내 의사와 전혀 관계없는, 본점 영업부로의 이동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환상적인 인사발령이었다. 많은 동기들이 지방을 돌고 있을 때 나는 본점에서 다시 본점으로 이동했으며 향후 3~4년간 은 본점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시 남들이 부러워하는 ‘영감님’이 되었다. 본점에서는 더 큰 기업들을 상대하게 됐다. 이내 몸에 반응이 왔다. 두통이 왔으며 밤잠을 설쳤다. 이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결혼을 한 후라서 혼자 결정할 수 없었지만 아내는 이직에 대해 공감해주었다.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세 번째 이직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직의 키워드는 ‘전문성’이었다. 인사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에 인사 분야 일을 하고 싶었다. 마침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S그룹이었다. HR(Human Resources) 관련 신규 사업을 검토하는 부서에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에게 꼭 맞는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지원을 했다. 연봉도 알아보지 않고 입사를 결정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이전 직장보다 낮았다. 그러나 첫 직장 때와는 다르게 연봉 차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S그룹에서 신규사업개발, 주력 관계사 인사기획업무를 시작으로 그룹글로벌HR, 기업문화, 인재육성 등 인사 관련 다양한 직무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내심이 부족한데도 S그룹에서 18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2~3년에 한 번씩 자의든 타의든 그룹 내에서 나의 포지션, 관계사의 변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현장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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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전까지 회사를 이직하며 고려했던 선택기 준은 ‘연봉’, ‘성장성’, ‘안정성’, ‘전문성’이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나는 이 기준들을 단순히 세속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기준들은 우리가 이직 할 때 후회하지 않게 도와준다. 그리고 이직을 할 때 꼭 체크해야할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질까? 최근 기독직장인 대회를 나가면서 후배들로부터 취업과 직장생활, 그리고 이직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인사업무를 하고 회사생활 을 많이 한 사람 측에 들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맺으며 지난 20여년의 직장생활 가운데 나에게 부족했던 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나는 ‘현재’에 감사하고 있는가? ‘감사하지 못하니까 이직을 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젊은시절 자아의식이 매우 강하고 경쟁의식이 높은 편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현재’에 대해 감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다른 더 좋은 것을 찾게된다. 현재 회사의 좋은 점보다는 다른 회사의 좋은 점을 더 크게 본다. 모두가 잘 아는 ‘Google’에 입사하면 천국일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지 않다. 그곳은 그곳 나름대로의 치열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신의 직장인 공무원 조직도 그들대로 고충이 많이 있다. 나의 회사가 연봉도 낮고, 상사도 마음에 안 들고, 유명하지도 않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하여 불러주신 그분의 손길이 우리를 지금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이를 인정하는 감사의 고백이 우리 직장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부르신 이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용기, 궂은 일을 자원해서 맡는 헌신, 동료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섬김 등. 때론 젊은 그리스도인 직장인에게 ‘현재’는 꼰대 상사가 넘쳐나는 비상식적인 ‘죄악의 땅’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무조건 그 ‘죄악의 땅’을 떠나야 하고, 그곳을 회피하거나 떠나기만 하면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는 절대 우리가 찾는 ‘가나안 땅’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죄악의 땅’이 곧 회복되어야할 ‘가나안 땅’임을 잊고 산다. 나도 ‘죄악의 땅’을 벗어나고자 무척 노력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겼다. S그룹 내에서도 끊임없이 ‘가나안 땅’을 찾아다녔다. 승진도 일찍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욕망의 바벨탑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서있는 곳이 불의와 비상식으로 가득한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그곳으로 부르셨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신다. 때론 헤드헌터를 통해, 다른 사람의 권유를 통해, 또는 기도와 묵상 가운데 미세한 음성으로 부르신다. 당신은 그 부르심에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왜 이곳에 있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지 돌아봐야한다.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당신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그 부르심에 반응하지 못하고 또 어느 것이 올바른 부르심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솔직히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숨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지만 그분의 관점에서 삶을 조망하는 훈련과, 앞으로 갈 길에 그분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요즘은 내가 지내온 시대와 다르게, 안정적인 직장은커녕 취업도 쉽지 않고 정규직 자리도 많지 않다. 회사생활에 많이 지쳐있는 젊은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하고픈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어렵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의 삶의 현장에서 당당해라. 왜냐하면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수치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의 직장생활 가운데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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