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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대학가 2020-08-28 조회8,971회 댓글0건

[매거진D-리뷰]
다시 보는 시간 - 엄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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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시간

나에게 필요한 시간은 무엇일까

달고나 커피, 계란을 천 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같은 것들도 귀찮아서 두 번은 못하겠다. 할 수 있는 게 많아도 심심한 요즘. 그저 방바닥에 누워 눈만 껌뻑거리는 요즘. 더 이상 새로운 것도 떠오르지 않아 생각은 자꾸만 과거로 간다.


나는 아직 젊은 편이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 던 나의 20대는 어땠었는지 생각해 봤다. 축구할 때나 남들과 다툴 때처럼 혈기왕성한 장면들이 스치지만 일상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포도 알 깨물면 터지는 상큼함이나 여름 숲의 풀내음 가득한 싱그러움 따위는 없었다. 지금 상황 못지않게 그때도 항상 무기력했고 틈만 나면 축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 기억이 대부분인 건 20대 중반까지 백수여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서거나 앉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가까스로 들어간 대학도 1년만 다니고 휴학했다. 책을 좀 읽고 싶어서였다. 물론 누워서. 그런 나에게 엄마는 “지금 네가 이럴 때냐”며 교회 집사님 아들과 비교를 오지게 하셨다.

질문이 생겼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머니. 말씀하신 그 녀석처럼 빡빡한 일상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도 경건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거기다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한 것. 그게 사람입니까? 그게 돼요?

물론 엄마한테 그렇지 묻지는 않았다.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건 너무 잘 알았으니까. 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로 대들다간, 누워 있는 아들놈 뒤집어서라도 등짝 스매싱을 날릴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궁금했다. 사람이 그렇게 완벽하게 살아질까? 그게 진짜 온전한 삶일까? 나는 그저 이틀에 한 번 책이나 영화를 보면 보람이 벅차오르는데, 그것도 꽤 오래 붙잡고 있어야지 이틀에 한 번 되는 건데 말이다. 이건 쓸모없는 짓인가. 도대체 일상을 충만하게 사는 건 뭘까?

답을 몰라서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면 과연 시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정해진 시간에 맞게 살아야 하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은 계속 살아계시면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시나. 정말 궁금한 질문이 많았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과거-현재-미래 순서의 시간은 그리스어로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신이다. 이처럼 시간 또한 누구도 거 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나에게 이럴 때냐고 하시던 엄마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시간 개념은 신학자들의 믿음으로, 철학자들의 추론으로, 과학자의 상대성이론으로 반박되었다. 공간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인 게 증명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계실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건 그 당시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게 된 것이다. 그 책에는 ‘시간과 시간 너머’라는 챕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루이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기도를 동시에 들을 수 있냐?”고 질문했다. 루이스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삶이 한 순간씩 다가온다. 한 순간이 지나가야 다음 순간이 다가올 수 있으며, 각 순간은 아주 짧다. 이게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 순서야 말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방식일 뿐 아니라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존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 밤 10시 30분에 10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10시 30분’이라고 부르는 그 짧은 순간에 그 모든 기도를 들으실 필요가 없 다. 하나님에게 10시 30분은 언제나 ‘현재’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조종사가 드리는 그 찰나의 기도를 들으실 여유가 영원 무궁히 있다.

루이스는 이어서 예를 든다. 한 소설가가 “메리는 책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는 문장을 쓰려고 한다. 이 때 소설 속에서 메리가 책을 내려놓는 일과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일 사이에는 시간 간격이 없다. 하지만 메리의 창조자인 소설가에게는 첫 문장을 먼저 써 놓고 두 번째 문장을 쓰기 전 몇 시간이든 메리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으실 여유가 무한히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가 만든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각각의 사람과 함께하신다.


소설가가 메리와 다른 시간 흐름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 또한 우리와 다른 시간 흐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시간 흐름에도 매여 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처럼 한 순간씩 흐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지금이 2000년이면서 벌써 2040년인 것이다. 하나님의 삶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시간을 우리가 곧장 따라가야 하는 직선이라 한다면, 하나님은 그 직선이 그려진 종이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A를 지나야 B에 갈 수 있고 B를 지나야 C에 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서, 밖에서, 또는 사방에서 이 직선 전체를 품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이 내용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란...! 지금까지도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설명해주는 신앙도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무렵부터 내 삶의 시간이 달라보였다. 아니 신앙생 활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종종 찬양하면서 부르는 가사 중에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게 이런 의미에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빛 되신 주’라는 가사도 생각해봤다. 창세기 1장에서 땅과 물과 어둠이 있을 때에 하나님 은 “빛이 생겨라”고 하셨다. 멈춰 있는 빛은 없다. 빛은 언제나 움직인다. 빛이 움직이면서 시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긴다. 하나님은 시간도 창조하신 것이다. 그 후로 하늘의 별 을 보면 창조의 첫 부분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이 있다.

그동안 익히 들었던 말씀도 다시 들여다봤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자신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마르다의 모습, 예수님이 죽으실 걸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이 보인 반응 등을 유심히 보 게 되었다. 나 또한 이 사람들처럼 내가 이해하는 시간 속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한편 시간의 다른 개념으로 ‘적절한 때’나 ‘기회’를 뜻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크로노스의 일직선에서 한 점이 된다. 인간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으로써, 크로노스와 관계없이 극도의 아름다움과 기쁨 등을 느낄 때의 시간이다. 나 또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이 그랬다. 기도하는 중이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영원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대로 멈춘 것도 아닌, 시간이 흐르는 걸 의식하지도 않는 그저 충만한 현재를 누리는 시간이었다. 물론 항상 거룩한 것은 아니다. 오버워치 플래티넘 티어에 처음 올랐을 때에도 이와 같은 감동에 울컥했다. 가끔 하늘의 별을 볼 때도 그렇다. 우리 일상에서 이런 시간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에 따라, 그리고 이런 시간을 얼마나 추구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것 같다.

시간 개념을 잡고 난 후에도 휴학했던 기간 내내 나의 등은 방바닥에 붙어 있었지만 생각은 깊어졌다. 안 하던 기도도 이따금씩 하기 시작했고 카이로스를 경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서서히 일상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했고 엄마를 피할 때만 움직였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시간을 다르게 보는 것이었다.



* 시간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책
순전한 기독교 C.S.루이스, 홍성사, 2001.

예수가 상상한 그리스도 김호경, 살림, 2007.


* 생각해 볼 질문
1.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아기였을 때, 자고 있을 때 우주는 어떻게 운행될 수 있었을까?
2.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동시에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을까?
3. 하나님은 내가 내일 할 일을 미리 알고 계실까?

답은 <순전한 기독교>에서 ‘시간과 시간 너머’ 챕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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